오예 문화생활/독서노트

[리뷰] GV 빌런 고태경 -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소설

디자이너 샤론 2021. 2. 2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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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을 때 주로 실용서적을 읽는 편이다. 영국 런던에서 몰타로 이사올 때 꾸역꾸역 짐에다가 넣어서 가져온 책들도 디자인, 마케팅, 공간과 관련 되어있다. 참, 그 중 유일하게 있는 소설 책이 한 권이 있다. 작년에 운좋게 얻은 에쿠니 가오리의 '저물듯 저물지 않는'. 런던 한인 독서클럽에서 한 멤버가 그 작가의 '도쿄타워'는 좋았는데 이 책은 재미없다며 건네주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어보는데, 얼마나 재밌던지! 실용서적에서는 불가능한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읽고 글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재미를 알면서도 나는 바보같이 소설책을 또 다시 잘 안읽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트레바리 클럽에 가입한 덕분에 최근 신간소설인 'GV 빌런 고태경'을 읽게 되었다. 일단 너무 재미있었다! 마지막 부분을 읽었을 때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누워있을 때였고, 읽다가 금방 잠들것이라 예상했는데 빠져들어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밤 12시가 지나있었다. 몰입도가 읽으면 읽을수록 고조되었다. 문체가 담백하면서도 한국어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을 오랜만에 읽으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역시 모국어로 읽는 책이 최고다!" 생각보다 순식간에 읽게 되어 감동적인 성장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점점 빠져들며 읽다보니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동이 몰려와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책을 보며 울어본 적이 언제더라.

영화감독이 주인공인 책에는 단어 두 개가 자주 나온다. GV 빌런과 시네필. 시네필(Cinephile)은 영화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며,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를 상영할 때 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직접와서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도 주고받는 무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GV 빌런은? 알고보니 관객과의 대화에서 무례한 발언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란다. 응? 난 그런 사람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나조차도 GV에서 질문할 때 굳이 영화 잘 보고나서 고생해서 영화만든 감독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 하지만 GV를 선호하지 않는 책 주인공 '혜나'와 다르게 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영화를 나와 다른 시각으로 본 사람들의 질문들을 듣는 것이 재밌다. 그러고보니 부산국제영화제에 매년 가는 지인이 GV빌런 에피소드를 얘기해 준 기억이 난다. 아 정말 존재하는구나. GV빌런.

GV 빌런 고태경을 공감하며 읽을 수 밖에 없던 것이 나도 주인공의 또래이며 영화를 복수전공을 했었고, 여행했던 곳 중 꽤 오래 머물렀던 나라 중 하나가 폴란드였다. 거기다 마찬가지로 여행가면 정말 별로 볼 거 없는 시즌인 한 겨울에 갔다. 유럽나라 수도 여행 중에 가장 널널했지만 그 도시만의 분위기가 좋았다. 주인공이 폴란드 영화 '콜드워'를 보며 바르샤바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때 나 또한 그랬었기에 '나도! 나도 그랬어 혜나야!' 라고 외쳤다. (진짜 몰입했었다.) 하지만 나는 시네필은 아닌것 같다. 영화전공을 차선책으로 선택했기에 오히려 공부를 하며 영화가 더 좋아지고 영화 보는 취향도 많이 달라졌지만 소위말해 시네필이라고 스스로 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트레바리 클럽을 통해서 나는 과연 시네필로 거듭 날것인가? 뭐, 아니면 어때. 좋아하면 그만이지. 히힛.

"관심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의 재분배, 최소생계 유지처럼 최소관심 유지가 되는 사회. 아무도 내게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 (문득 주변에 있는 힘든 동료들이 있다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고태경은 서부의 총잡이들 처럼 서로를 노려봤다." (상상하며 씨익 웃었다.)

"엄마, 나 그래도 토렌드에서 1등 했어." (진짜 이 문장 너무 웃펐다..ㅠ_ㅠ)

- 삶은 엉터리고 대부분 실망스러운 노 굿이니까 사람들은 오케이 컷들만 모여 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가 '영화 같다' '영화 같은 순간이다'라고 하는 것은 엉성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오케이를  살아보는 드문 순간인 거다 [...] 계속 후회 속에 빠져 멈춰 있을 순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

- "여기에 들어온 이상, 너희는 둘 중 하나가 된다. 유명한 감독이 되거나, 유명한 감독의 동기가 되거나." (참 잔인한 말이다. 유명해지지 못하면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것인가.)

- 캐릭터가 겹치면 하나만 살아남는다. (이 사실이 배우 뿐만이 아니라 감독에게도 적응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지. 진정으로 응원해주고 지켜봐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돼." (나는 이런 사람이 학창시절에 없었다. 당시에 스스로는 몰랐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그래서 참 외로웠다는 것을.. 지금은 감사하게도 응원해주는 지인들이 있어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 누가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도록 만들다니 너무 고립되어 있었구나 싶었다. (공감되고, 짠한부분 ㅠㅠ)

- 그건 바르샤바가 내게 가져다준 변화였다. 벌어지지 않은 일을 기대하며 품게 되는 행복 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고 손에잡히는 행복에 집중하는 것. (인생의 진리다. 알면서도 살면서 자주 잊게되는 진리.
)

- 사람들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함께 일상을 나누고, SNS를 열심히 하는 것도. 삶의 목격자가 필요해서다. (코로나로 이 필요성이 더 커진 것 같다.)

-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목격자를 누구로 두는가, 때로 그건 선택할 수 없다.

- 이국의 언어가 주는 기억의 환기에 어느새 눈가가 축축해졌다.

- "빛을 보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 (주인공 처럼 결말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위기, 장애와 같은 어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현재 겪는 어려움들을 곧 나에게 나타날 빛의 예고편이라고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해보았다.)

-  이제는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인생이 '원 찬스'가 아니고 내가 다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와 연출 노트를 열심히 쓰면서.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참 중요한데, 피곤함을 핑계로 너무 게으르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했다. 그리고 최근 일하던 곳에서 실수를 해버려 절망하고 있을 때 같이 일하던 분이 자상하게 '실수는 우리 일에 한 부분일 뿐이야' 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 말에 내가 얼마나 위로를 받았던가 ㅠ_ㅠ)

- 신기루를 쫒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완성된 영화가 빛이 되어 먼지를 뚫고 흰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환상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가 보낸 세월이 빛이 된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내 삶에 더 기대하게 된다.)

-  박원호 교수님이 말했던 선택의 프로.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광적으로 좋아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미워하기 보다는 미련이 남는다. 미련 보다는 더 사랑해야겠다.)

독서리뷰를 마치며...

나의 '인생 영화 톱 파이브 (Top 5)'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만들어 봐야지 ;)
지금 사는 곳에 단팥죽 가게없다...고로...단팥죽을 해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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