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런던을 떠나야만 하는 날이 왔다.
큰 짐과 함께 이사 자주 다니기가 버거웠기에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소망하며가지고 있는 물건들의 양을 최대한 늘리지 않았음에도 이삿짐 정리는 왜이리 오래 걸리고 양은 또 왜이리 많은 것인가...
삼 일 전 미리 예약한 까만택시가 10분 전에 도착했고, 같이 살던 해쓸이하고 라우라가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런던집 안녕... 잘 살다 간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었고,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 서포터즈였다. 쏘니로 이야기 꽃을 한참 피웠다. 하하하. 원래 다른 팀을 응원하던 아저씨 가족은 축구선수인 삼촌이 토트넘으로 이적하면서 지지하는 팀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여기는 영국이구나.
마지막으로 런던에서 택시 타던 때가... 2년 전 넷플릭스 '플린치'를 노던아일랜드에 있는 벨파스트에서 촬영하고 런던시티공항으로 잉글랜드에 돌아왔을 때 너무 늦어서 대중교통이 끊겼을 때였다. 그 때 택시기사 아저씨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셔서 한 시간 동안 지성팍 (박지성 선수) 이야기를 하셨다.
역시 여기는 영국이구나.
이번 토트넘 팬인 아저씨와는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런던 토박이인 당신께서는 아무리 생활비가 많이 든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넘치고 할 것들이 많은 런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데, 그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저씨..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런던 떠나는 게 더 미련 남잖아요.. ㅠ_ㅠ..)
아저씨는 곧 한 달간 다시 시작되는 영국 봉쇄로 다시 택시손님이 줄어들 것에 대해 걱정하셨고,
(이 뉴스가 영국 떠나기 바로 전날 속보로 떠서 정말 깜놀했다.)
아직 10대인 아들 딸이 있는데 부담이 많이 된다고 하셨다.
지난 봉쇄 때에는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 오히려 수입이 조금은 늘기는 했지만 이번 봉쇄 때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아이들이 돈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저씨는 그 철학에 대해 확고하셨다. 당신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그 유산은 손자 손녀인 당신 자녀들에게 상속된다고 하는데, 정~말 신기했다. 가끔 영국친구들 중에 할머니, 할아버지 한테 유산으로 집을 물려받는 20대 친구들을 만나는데,영국에서는 흔한 상속스타일(?)인건가.
"아저씨가 버젓이 살아계시는데 상속을 자식한테 바로 넘겨줘도 괜찮아요?"
"아이들이 재정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하니까"
히드로공항 터미널 5 도착.
코로나 터지고 처음으로 가는 공항인데, 입구 들어가기 전에 손 세정제와 마스크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일회용 마스크가 구비되어있었다.
공항 내에 있는 벤치들 중간 중간에 못앉도록 표지판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다.
수하물 부치고, 마지막으로
카페 네로Nero에서 공항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마셨다.
영국 체인 커피점 중에서는 역시 네로가 최고.. 그리울 거야.. ㅜㅜ
몰타 국제공항 도착.
큰박스2개, 큰 캐리어, 작은 캐리어, 카메라 가방, 노트북 2개 든 배낭 하나.
모두 합쳐 80키로 이상 되는 짐을 카트에 실으려고 하는데 식겁했다.
1유로 동전을 디포짓을 해야 카트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공항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인색한 공항은 또 처음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히드로 공항에서 유로 좀 뽑아 놓을 걸 그랬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주변에 ATM이 하나도 없었고 단지 유로 화폐를 동전으로 바꿔주는 기계만 있을 뿐이었다.
억척스럽게도 나는 짐을 하나하나씩 옮겼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도착할 때 까지의 거리가 한 400미터 정도 되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짐이 한 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카트도 없이 여자 혼자서 나르고 있으니 ㅎㅎ
다행이도 바닥이 대리석이어서 박스를 밀면서 옮길 수 있었다.
그 바닥이 까끌까끌한 시멘트 바닥이었다면... 아우 상상도 하기 싫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짐을 끌고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카트는 왜 안쓰는지 물었고, 나는 분하고 억울한 톤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본인 주머니에서 1유로 동전을 꺼내주는 아저씨. 하하하.
드디어 도착한 몰타에서의 새 집.
집주인이 끝까지 비번을 알려주지 않고 도착해서 연락해야 알려준다고 해서 정말 걱정했다.
보증금도 냈고, 방세도 다 냈는대도 안알려주니 참...
방세 내는 날 이틀 전에 집주인 '방세를 계약에 명시된 날 전까지 바로 주지 않으면 건물 안에 들어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는 '물론 일리있는 말씀이지만, 파운드가 애매하게 남아서 한국계좌에서 보내려고 하는데 이체신청하고 4-5일은 걸릴 예정이다.
신청하고 인증사진도 보내고 할테니 3일정도 늦게 지불하면 안되나요' 하니 '비지니스는 비지니스'라며 절대 안된다고.. 하하하..
판데믹으로 회사관련 일처리에 이사준비 하느냐고 정신 없었는데 집주인이 제대로된 복병이었다 ㅋㅋㅋㅋㅋ
그래서 그 정신 없는 가운데서도 한국카드로 파운드를 뽑아 영국거래 은행인 '몬조'에 돈 넣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입금한 뒤 집주인 계좌로 겨우겨우 방세를 건넬 수 있었다. 엄청나게 강직한 분인 것 같은데, 앞으로 생활하는데 많이 고단할 것 같다. 화장실 딸린 스튜디오는 나만 쓰는 거지만 부엌은 이 분과 같이 써야하는데 참 걱정이다.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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