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 즉흥여행
“저 오늘 생일이에요!”
새벽 6시 30분경, 단골인 젤라또 가게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키며 내 생일을 알렸다. (더 정확하게는 가게로 걸어오는 나를 사장님이 나를 발견하자 마자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시작하셨지만)
사장님과 사모님이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사장님 - “이제 몇 살이야?”
나 - “33살이요!”
사장님 - “아직 젊고만.”
나 - “흠…그런가요?ㅎㅎㅎㅎ”
평소 루틴대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들이키고 나서 근처 성당으로 향했다. 가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은혜라고, 감사기도를 하고 급하게 나왔다. 즉흥여행을 가게 되었기에…
원래대로라면 다음으로는 운동을 해야하지만 슬리에마로 가는 버스를 타기 직전 프레드릭한테 연락이 왔다.
이 친구랑 원래 오늘 마르사스칼라에 있는 폐가호텔에 가려고 했는데 야간근무 5일 동안 하고 가기 힘들 것 같다고 2주 뒤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곧 야간근무 끝나는데 바로 마르사스칼라로 놀러 갈 수 있을 것 같단다.
평소 아침 루틴을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온 메세지. 프레드릭도 한식쟁이 같이 즉흥적 여행을 즐기는 모양이다.
나 - “정말 갈 수 있겠어? 우리 진짜 폐가호텔가는거야?”
프레드릭 - “지금 뭘 결정하기에 너무 피곤해. 니가 결정해.”
뭐야 이녀석ㅋㅋㅋ 자기가 제안해놓고는 ㅋㅋㅋ
나 - “가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 폐가호텔에서 입고 촬영할 옷들을 챙기고 마르사스칼라에 가는 버스가 오는 발레타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프레드릭을 기다리며 걱정이 되었다. 일 끝나고 집에 들려 옷갈아 입고 온다는 프레드릭이 혹시나 잠에 들어 못오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타났다!!
도착한 마르사스칼라는 바닷가 근처인 다른 지역들과 또 다른 느낌이었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호텔로 향하며 바닷가를 따라 걸어가는 데 모래사장 대신 있는 큼직한 암석바다에 신기한 네모난 모양으로 공간들이 나누어져있었다.
그 중 하나가 왠지 엄마 뱃속 같은 느낌이어서 자리를 잡고 프레드릭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 모양은 자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하니 프레드릭은 남자성기 같다고 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자궁이라고! 엄마 뱃속이라고!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의 평온했던 모습이야!
폐가가 되어버린 호텔은 폐점이 된지 오래되어 입구가 막혀있는 상태였다. 이미 한 번 와 본 프레드릭은 건물 근처를 살짝 둘러보며 어떻게 건물 안으로 들어갈지 인도해주었다.
울퉁불퉁 거친 큰돌 위를 조심조심 지나고 담을 넘는데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재밌었다!
호텔 내부는 폐가 그 자체였다. 누군가 신나게 그리고 간 벽의 그레피티와 바닥에 널부러진 쓰레기들이 전부였다. 아침에 왔으니 다행이지 저녁에 오면 정말 귀신의 집이 따로 없을 것 같다. 그 전의 모습이 어땠을지 프레드릭은 설명해주었다.
프레드릭 - “사진 찍는 거 잠깐 멈추고 한 번 둘러 봐봐. 여기 이 길목부터 저 곳 까지는 로비였을 거고…”
프레드릭이 설명해주니까 과거에는 이 황량한 건물이 원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건물 곳곳을 구경하며 프레드릭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렸을 적 힘들었을 때를 회상하며 공유하기도 했다. 평소보다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이 여행의 매력인듯!
덴마크어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프레드릭의 모습에 빵터지기도 했다 ㅋㅋㅋㅋㅋ
프레드릭과 헤어지고, 내 사랑 집으로 향했다.
내 사랑이 삼계탕과 취나물 멸치 김치 반찬으로 구성된 감동적인 저녁식사를 준비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팬케잌에다가 생일초도 꽂아주고 너무 감동이었다. 내가 남자면 진짜 프로포즈하고 싶다. 누가 데려갈지 참 운좋은 사람!
한국으로 못돌아 간지 2년 4개월차. 삼계탕을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사랑 덕분에 한국음식을 몰타에서 잘 먹고 있고, 덕분에 한국이 덜그립다…ㅎㅎ
맛난 음식과 디저트로 배를 두둑히 채워 한껏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저녁을 함께한 일본친구랑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방을 즐겼다. 정말 신나게 놀았다. 아… 이것이 행복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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