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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르코와 라울


쉬는 날에 갑자기 회사에 출근하게 되어
집들이 초대한 미에르코와 라울에게 문자를 했다.

나 - “얘들아 진짜 미안한데..
우리 밥 1시간 만 먹고 헤어져야 할 것 같아 ㅠ_ㅠ…”

그들이 오기 전 까지 3시간 전.
가까스로 떡볶이와 닭갈비 만들기 성공!

혼자 있을 때는 귀찮아서 잘 안먹는 고구마도 삶아서 예쁘게 썰고
양념장도 휘리릭
고기를 재우고
수제 떡볶이 완성
닭갈비도 완성



이사하고 미루고 미룬 청소를
1시간 안에 서둘러 마친 뒤

밥을 먹고 바로 회사를 가야하기에
샤워를 부리나케 하고,
화장을 5분컷으로 끝냈다.


‘집을 청소하려면
사람을 초대하면 된다’


누가 그런던데 정말이다.

신기하게도 모든 미션을
끝내자 마자 내 집에 도착한 전하메들.


집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라울이 곧 몰타를 떠나고
미에르코는 당일에 고국 이탈리아로 돌아가
당분간 있을 예정이라
어쩔 수 없이 집들이를 강행했다.

라울 - “급하게 오느냐고 아무것도 못샀는데,
근처에 꽃 파는 곳 없어?”

와 감동이다.

나 - “Awww 괜찮아!
지금 우리 한 시간 밖에 없으니까 먹기만 해!”



안타깝게도
떡볶이는 인기가 없었지만
처음 만들어 보는
닭갈비는 두 남자 모두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 - “으악, 나 닭갈비에 있는 생강 씹어버렸어.”

라울 - “미에르코, 생강은 이태리어로 뭐야?”

미에르코 - “(생각에 잠긴다) 모르겠어…”

나 - “너 이태리어 할 때 억양도 별로 세지않고,
생강도 뭐라고 하는지 모르는 거 봐서
진짜 이탈리아 사람 아닌 거 같아 -_-…”

미에르코는 폰을 집어들고는
이태리 사전에서 생강을 검색한다.
그가 이탈리아 사람으로 유일하게 느낄 때는
바로 파스타를 맛있게 만들 때다.

엄마 한테 배운 파스타 레시피만

30가지 라고…

역시… 이탈리아…

오랜만에 라울, 미에르코와
다같이 살았을 때
부엌에 모여 떠들었을 때 처럼
1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함께 집을 나서는데
미에르코가 아쉬운지
커피를 사먹자고 제안했고
근처 가게에서 라울이 한턱쐈다.

만난지 몇 달 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작별인사 할 때가 오네.
몰타에서 더 자주 이런 때가 오네.

점점 이별에 익숙해진다.

아쉬움 가득한 채로 헤어졌고,
마지막 만남을 예쁘게 마무리했다.

(아? 그러고 보니 라울이 돌아가는
스페인 지역이 지금 프레드가 사는 곳이네?
🤣 재밌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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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에서 만드는 크루아상
정말 맛있다.

(일단 이 문장으로 포스트를 시작해 본다.)

7월 말부터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고,
성공했다!


비결은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운동가는 길에
젤라또 가게의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게 했고,

내 마음 속 평안을 주는
성당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커피 다음 코스로 기도하는 스케줄을 넣었다.

이렇게 보상을 주게 되니
자연스럽게 새벽에 눈이 떠지고
운동을 가게 되었고, 습관이 되었다.

운동하러 가는 길에 에스프레소 마시러 가는 단골 젤라또 가게


문제는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젤라또 가게가 크루아상 판매를 시작했다.
점점 다양한 크루아상의 메뉴가 늘어났다.

헤이즐넛 맛 크루아상 2.5유로


그렇게 하나씩 매일 사먹게 되었고,
하나는 두 개가…
두 개는 세 개가…
점점 한 번에 사먹는 크루아상 갯수가 늘어났다.


오픈시간에 맞춰서 가면
빵굽는 냄새가 가게에 은은하게 나는데,
정말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이 갓익은 크루아상… 누가 거절하겠는가…

한 입 베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하나만 먹어야지 하지만
쉽지 않다.
그렇게 난 크루아상 중독자가 되었다.


아삭아삭하고 고소한 피칸 데니쉬 파이
젤라테리아에서 제일 맛난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2.5유로


통곡물 크루아상과 레몬파이



이제 젤라또 가게 가면 사장님 마리오가
아무말도 안했는데
에스프레소를 내리면서

마리오 - “크루아상 한 다섯개면 되는 거지?”



나 - “아니요! 오늘은 안 사먹을 거에요!”



마리오 - “초코 크루아상,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나 - “아, 안먹는다고욧 -_-!!”



그렇게 얘기했지만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을 시작으로
다음 빵을 또 주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회사 식당에서 판매하는
갓구운 크루아상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

(자, 사진자료 들어갑니다)



가끔 식당 직원들이
빵굽는 시간을 까먹을 때가 있어서

쉬는시간 맞춰서 따끈할 때 못먹을까봐
빵 잘 굽고 있는지 매일 물어본다.


어느 날은 내가 한 직원에게 물어보는데
그녀가 씨익 웃더니 묻는다.

직원 - “뭐 먹으려고?”


나 - “피스타치오랑 플레인 맛 이렇게 두 개!”



그 날 미리 빵을 구운 그녀는 큰 오븐에 구워진 여러개의 크루아상 들 중 내가 원하는 두 개를 꺼내 나에게 건넨다.

직원 - “아직 식당 오픈 안했으니까 나중에 계산해”

나 - “(하트뿅뿅 눈빛) 사랑해.. 진짜 사랑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정도면 정말… 중독이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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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에마 새벽, 길거리에서 드르렁 쿨쿨 자는 사람. 몰타이기를 천만다행이다. 한국 겨울에 저러면 얼어죽을 수도 ㅎㄷㄷ


새로 이사간 슬리에마 동네에는 항상 마실 다닐 때 마다
지나치는 장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멍가게가 있다.
상조가게가 저리 작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작디 작다.


안을 들여다 보면 나무재질의
고급져 보이는 관들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요즘 그 가게를 지나치며 그 관들을 한참 바라보고 지나간다.


코로나가 터지고 이 가게는
얼마나 많은 슬픔들을 지켜봐야했을까.
이 가게의 스토리가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라는 자각이 되어
이런 저런 생각이 들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라는 고민도 된다.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 등등 말이다.


처음에는 집근처에 저 가게가 있어서
조금은 불편했는데 그 공간이
나에게 주는 깊은 생각들로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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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새벽에 즐기는 씁쓸하고 고소한 에스프레소 한 잔, 카페인으로 정신을 차리고 성당가서 기도를 드리고 난 뒤 운동가는 아침루틴 ;)


새벽 6시부터 오픈 준비하는
슬리에마의 젤라또 가게 ‘파이짜 젤라테리아’

Pjazza Geleteria


발레타를 마주하는 바다근처 광장에 위치하여
슬리에마에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곳이다.

‘Pjazza 파이짜’는 몰타어로 ‘광장’이라는 뜻이다.

이 새벽에 굳이 문을 열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러 온다.
가끔 나처럼 갓구운 크로아상을
커피랑 곁들여 먹는 사람도 눈에 띈다.

비가 사무치게 내리는 새벽.
나가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서둘러 메일을 보낼 일이 생겼고,
인터넷이 안터져서 결국 노트북을 부랴부랴
젤라또 가게로 향했다.

깜깜한 새벽에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열려있는 가게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젤라또 가게 사모님인 미쉘은 드디어 나에게 첫 질문을 건넸다.

미쉘 - “일 하러 가는거니?”

나 - “아니요, 운동하러요.”

의아해 하는 미쉘.

미쉘 - “뭐하러 이렇게 일찍가?”

나 - “햇빛이 싫어서요…”

미쉘과 옆에 물건 떼러 오신
하얀 콧수염 할아버지가 충격받은 표정이다.

젤라또 가게 사모님 미쉘



나는야 영국에서 흐린날씨를 제일 좋아한 사람..
수영은 하고 싶은데 태양은 피하고 싶어
밤수영을 즐기는 사람…

영국에서 몰타 오자마자
햇빛이 강렬해 눈부시다고 불평한 사람…

그런 내가 몰타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참 희한하다.
뭐, 이렇게 새벽 또는 밤에 활동하기는 해야하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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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프레디 - “넌 참 카툰캐릭터 같아.”

나 - “그 말 많이 들어.”

프레디 - “그리고 크레이지해.”

나 - “그 말도 많이 들어.”

바로 전 주에 하우스메이트였던 라울이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단다.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욘석아.

이틀 뒤면 새 직장을 구한
스페인으로 이사가는 덴마크 친구 프레디.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도 하는 친구인데, 이외로 한국음식은 제대로 먹어본 경험이 없다.

이 친구 심지어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보고는
달고나 체험도 직접했다.

프레디의 달고나체험 인증샷


그래서 새로 이사한 집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음에도
초대해서 한식을 직접해서 먹이기로 결심을 했다.

미리 프레디가 집에 방문하기 전 양해를 구했다.

나 - “프레디, 나 이사 온 지 얼마 안되어서 짐정리도 다 안되었고, 너 밥 준비하느냐고 청소할 시간도 없었어. 그래서 집이 좀 개판이야. 이해해줘!”

놀러온 프레드는 집에 오자 마자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포즈를 취하며 물었다.

프레디 - “나 화장실 좀 써도 될까?”

나 - “응! 꼭 앉아서 써! 너 같이 장신인 애가 서서 싸면… 나 뒷처리 하기 싫어 -_-!!”

프레디 - “물론이지.”

아따 손크다~장신인증 ㅋㅋ


키 큰 사람이 참 많은 스칸디나비아 나라 사람답게
프레디의 키는 196cm.

내가 프레디를 알게 되었을 때
“너 참 크다. 186정도 되는 거니?”라고 물었는데,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프레디 - “내가 그렇게 작아보여?”

본인키에 은근 자부심이 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 앉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자기는 유연해서 가능하단다.
그게 상관있는 건가 -_-?



준비한 한식으로는 프레디가 항상 먹고 싶어했던
떡볶이와 송편을 가장 먼저 만들었고,

날이 갈수록 빚는 실력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인 그를 위해 고기 안들어간
잡채, 배추된장국, 김치볶음밥, 김치전, 감자조림을 만들었다.

이 사진을 보니 내 스스로가 참 기특하다



그리고 그가 오기 바로 전 날 김치를 담궜다. 김치를 익은것, 갓만든 것을 골고루 먹이고 싶었다.
(무슨 군대 가는 아들내미 먹이는 것 마냥 ㅋㅋ)

일단 프레디에게는 감자조림이 제일 인기가 없었고,
나머지 메뉴들은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을 연발하며 먹었다.

익은 것, 갓만든 것 골고루 먹어보게 했다 ;)



프레디 - “나 여기 김치 다 먹어도 돼?”

나 - “어! 더 줄까? 익은거? 아니면 안익은거?”

프레디 - “다 좋아…”

김치를 좋아하는 유럽친구들은 김치를 반찬이 아니라 거의 샐러드 처럼 먹는다. 내가 한 달치 먹을 것을 한 번에 다 먹는다 ㅋㅋㅋㅋ (물론 내가 김치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프레디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단하다 ㅋㅋㅋ 스페인 가기 전 이틀 안에 다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남은 잡채와 함께 김치 500그램을 빈 유리병에 담아 주었다.

시간이 없어서 3시간 동안 정말 혼신의 열정으로 빠르게 만든 메뉴들
프레드에게 인기가 없었던 감자조림. 난 맛났지롱.
된장국 좋아해서 스스로 만들기까지 한다해서 배추된장국 메뉴선정
김치를 볶는 자체를 신기해하길래 옳다커니 김치볶음밥도 먹어보렴

잡채는 한국에서 보통 잔칫상 메뉴라고 설명해줬다.


처음 만들어 본 감자조림! 진짜 맛났는데 인기없었음 ㅎㅎ
직접만든 수제 떡볶이

그리고 프레디가 인생 최초로 떡볶이를 먹는 순간이 다가왔다. 프레디는 내가 인스타 스토리에 떡볶이떡과 송편을 만들어 올리는 것을 볼 때 마다 항상 맛보고 싶었다고 한다.

프레디 - “이거, 오징어 씹는 거 같아.”

나 - “(정색하며) 야, 그럼 내가 떡이 먹고 싶을 때 오징어를 사먹지 이렇게 굳이 직접 떡을 만들어 먹었겠니 다시 먹어봐봐 -_-“

프레디 - “이 식감에 익숙해 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찰떡의 쫀득한 식감이 서양음식에는 거의 없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한 두 개 먹고는 안먹을 것 같이 말하더니 바닥을 보일 때 까지 어설픈 젓가락질로 열심히 떡볶이 하나하나를 집어 올려 맛보는 프레디.

프레디 - “(송편을 맛보며) 안에 깨가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하니까 흥미로워 한다.

프레디 - “그런데 내가 이렇게 얻어 먹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

나 - “그럴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지!”

일 밤새서 했는데도 안자고 폐가호텔 데려다 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했으니 당연히 자격있지.

항상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관심있어하는 프레드가 한식을 먹어 본 경험이 없어서 그게 마음이 참 안좋았는데 그가 몰타를 떠나기 전에 이렇게 한꺼번에 먹일 수 있어서 뿌듯하다.

한참을 먹는 것에 열중하던 프레드는 긴 다리가 식탁 밑에 한동안 겨우겨우 꾸겨져 있던터라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다리를 들어올려 측면으로 옮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사에서 가끔 보던 장면이라 빵터졌다.


잘 가, 프레디!
스페인에서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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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후 집에가는 길에 만난 개



7년 만에 혼자사는 기분은 좋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복잡하고 미묘하다.

얼떨떨하고, 어색하고, 너무 좋아서 울컥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고, 감사하기도 하고…

온갖 감정들이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간다.

무엇보다 혼자 사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보니 내가 머무는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몰타에 놀러 와서 슬리에마에 위치한 에어비엔비에 숙박하는 기분이다.

새로 알게 된 집근처 교회, 새벽 미사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다



몰타에  ‘나혼자 산다’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새벽 6시 10분쯤 도착해서 에스프레소 마시는 단골 젤라또 가게. 이제는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 안타고 걸어서 10분이면 간다.



전에 에밀리 언니가 나에게
혼자살게 되면 무엇을 먼저 제일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혼자 있고 싶어요.”

밝은 성격과는 달리 집순이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오랜시간 동안 ‘완벽하게’ 혼자있기를 항상 꿈꾸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졌다.

어색하기는 한데 좋다. 씨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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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짐싸기


이사해 본 사람은 안다.
이삿짐 싸기는 정말 이사 가기 직전까지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싼다고 했지만
이사 당일에도 해야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

새벽에 출근하는 라울과 잘지내라고 인사하고,
계속 짐을 싸는데 오늘 짐 옮기는 것을 도와줄
천사 미에르코가 기상해서 자기방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멀찍이 부엌에서 한국말로 “미에르코 일어났어?”
했더니 미에르코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Yes”라 답한다.
(나는 한국어를 모르는 친구들도 편해지면 그냥 한국말을 해버린다. 그리고 센스있는 친구들은 정말로 알아듣거나 너스레떨며 알아듣는 척을 한다. ㅋㅋㅋ)

미에르코는 나가는문 앞에 한껏 늘어난
내 짐박스와 가방을 보며 놀란 표정이다.

미에르코 - “짐넣을 가방 더 필요해? 나 있어.”

나 - “아니야, 최대한 꾹꾹 넣어서 담으면 괜찮을 거야. 여기서 더 늘어나면 벤택시에 다 못들어갈까 걱정이야.”  


내가 이사가면 깔끔한 미에르코가 내 방을 쓰기로 해서 최선을 다해서 혼신의 열정으로 청소했다.

몰타의 10월은 우기다.
비가 정말 많이 내린다.
그래서 박스에 짐을 싼 나는 걱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9시 부터 우두둑 떨어지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와르르 쏟아진다.

나 - “미에르코! 비온다! 어떡해 ㅠ_ㅠ!!
         좀 기다려 보다가 비그치면 바로 택시불러서 짐 옮기자!”

키 잃어 버리고 받은 스페어키와, 복사한 키..
정든 부엌아 안녕
짐을 나누어서 엘리베이터에 미에르코와 함께 내려보냈다 ㅋㅋㅋ
사람 한 명 사는데 짐이 참 많다.
자 이제 슬리에마로 가자

부엌에 있는 창문을 통해
계속 비가 하염없이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상예보를 보아하니 하루종일 비가 내릴 것 같고 짐이 많으니 내가 탈 자리 밖에 없을 것 같으니 짐을 택시에 옮겨주기만 해도 될 것 같다고 하니 천사 미에르코가 말했다.

미에르코 - “그래도 짐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앉을 자리 하나 있으면 같이 갈게.”

넌 천사야, 미에르코… ㅠ_ㅠ…

다행히 어마어마한 나의 짐은 미니벤 택시에 다 들어갔고, 미에르코도 앉을 자리가 충분했다.

이사할 때 마다 깨닫는 교훈 :
짐을 줄이자.. 쓸데 없는 거 사지말자…

(식재료 포함 부엌짐이 5박스 이상 나온 것은 안비밀.. )  

미에르코 덕분에 편하게 이사할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에 점심을 사먹으러 갔다. 그런데 이 천사가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내겠다고 계속 우긴다. 그래도 내가 승리했다.

이삿짐 천사 미에르코
슬리에마의 나름 맛집인 사쿠라의 스시, 맛있다 ;)
꼬치도 맛나다!


밥먹고 나서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현금이 없어서 미에르코 삥뜯은 것은 안비밀..ㅎㅎㅎ

젤라또도 얻어 먹었다 ㅋㅋㅋ
삥뜯어서 미안 미에르코..
다음에 맛난거 해줄게 ;)

젤라또는 피스타치오가 제일 맛나지요



날씨가 다행히 한동안 개어있어서 바다보면서 산책하고 소화도 시키다 보니 피곤이 몰려와 드디어 이사한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여니 아무도 없다.


우와 드디어 혼자 산다.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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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미에르코, 좀 더 억양을 빡세게 해봐봐.”

미에르코는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말하는데, 그의 억양이 나는 영 만족이 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많이 보여주는 이탈리아어는 엄청난 열정이 담긴 빡센 악센트인데, 미에르코는 참 단조롭게 말한다.

깨알 하우스메이트 자랑 : 시키지 않아도 플라스틱 물통을 납작하게 해서 버린다. 깔끔한 하우스 메이트들이라 너무 좋았다.



나는 영화에서 본 억센 이탈리아어를 미에르코에게 시전하고 좀 더 강렬하게 말을 해보라고 요구하고, 착한 미에르코는 좀 더 노력해본다. 하지만 나는 또 만족이 안된다. ㅋㅋㅋㅋㅋ

부엌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스페인 출신 라울은 깔깔웃는다. 좀 웃기는 상황이기는 하다. 한국애가 이탈리아애한테 이탈리아 사투리를 디렉팅하며 만족하지를 못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



이사가기 전 마지막 날.
라울이 응원하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있었다. 나도 마지막이니 평소 보지 않는 축구경기를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봤다. 그리고 라울이 드디어 스페인에서 건너온 하몽을 개시했다. 여지껏 먹었던 가공육 중에서 식감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가장 질이 좋은 것 같았다.


축구경기는 레알마드리드의 승리가 되었고, 라울은 우울해하며 한 마디 했다.

라울 - “한 잔 해야겠네…”


그렇게 우리는 그리자에 있는 아이리쉬 펍을 갔다. 한식쟁이 집 근처라 항상 지나가기만 했는데, 드디어 한 번 가보았다. 가서 함께 즐거이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와서는 미에르코에서
까르보나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엄마 레시피라고 해서 완전 집중해서 배웠다.

완성된 까르보나라를 먹는데 맛이 기가막히다.
한국에서 사먹는 휘핑크림과 우유로 만든 크리미한 까르보나라와는 또 다른 깔끔한 맛이다.

고맙다, 미에르코 ;-)

미에르코가 열어준 유리소스통


유리병뚜껑 못열고 낑낑 댈 때 마다 니가 제일 그리울 거야! 집에 돌아올 때 문 딱 열었을 때 요리하고 있는 너네들 모습이 그리울 거야!



라울 - “이렇게 송별회 잘 마무리 했네. 새 집에 우리 초대하는 거지?”

나 - “당연하지! 이삿짐 옮기는 것도 도와주는데 대접해야지!”

역대 최고 하우스메이트들인데 당연하지 얘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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